[분석] 타워크레인 월례비 받았으니 '건폭'?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03.0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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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도 타워크레인 기사 월례비는 임금 성격 판단
학교 공사지연은 학교 승인이 늦게 난 것이 주원인
일방적 낙인찍기보다는 합리적 조정과 대화 필요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노조를 향한 공세가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습니다. ‘노조 때리기’를 넘어 ‘노조 악마화’로 치닫고 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정부여당은 지지층 결집과 국정 장악을 노리고 노조를 향한 공세를 퍼붓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노조를 향해 쏟아낸 발언들은 과연 사실일까요? 뉴스톱이 팩트체크했습니다.

출처: 대통령실 홈페이지
출처: 대통령실 홈페이지

◈"공사지연·불법갈취 '건폭' 단속" 윤 대통령과 원 장관의 주장

윤석열 대통령은 ‘건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건설현장의 갈취・폭력 등 조직적 불법 행위에 대해 검찰, 경찰,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가 협력해 강력하게 단속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어 “단속이 일시적으로 끝나선 안 될 것”이라며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하게 단속해 건설 현장에서의 법치를 확고히 세울 것”을 지시했습니다.

건설현장의 ‘건’과 조직폭력의 ‘폭’을 끌어다 붙인 ‘건폭’은 건설 현장 노조원들을 폭력배에 빗대 윤 대통령이 만들어 낸 말입니다. 이런 뜻의 ‘건폭’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말입니다. 정부가 꼽은 건설현장 갈취∙폭력의 대표 사례는 타워크레인 월례비입니다. 마치 노조가 사업자를 갈취해 주지 않아도 되는 월례비를 뜯어가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월례비의 성격에는 논란이 있습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노사관계 주무부처 장관이 아니지만 ‘노조 비판’의 최선봉에 서있습니다. 지난번 화물연대 파업 때 강경 대응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원 장관은 지난 1월 부산 명문초 신설 현장을 찾아 “후진국 같고 무법지대에 있는 조폭들이 노조라는 탈을 쓰고 설치는 것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 다시는 집단이기주의로 인한 불법행위가 교육 현장에 피해를 미치지 않도록 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레미콘 운송기사∙화물연대 파업으로 공사에 차질을 빚어 학생들이 불편을 겪게 됐다는 주장입니다.

윤 대통령도 앞에서 언급한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이 학교 사례를 언급합니다. 윤 대통령은 “건설 현장에서는 강성 기득권 노조가 금품요구, 채용 강요, 공사방해와 같은 불법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공사는 부실해지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개교와 신규 아파트 입주가 지연되는 등 그 피해는 국민에게 전가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출처: 국토교통부 홈페이지
출처: 국토교통부 홈페이지

◈ 티워크레인 기사 월례비는 불법갈취? 법원은 '임금'으로 판단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사업체로부터 월례비를 받는 것은 갈취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무리한 일입니다. 우리나라 법원에선 타워크레인 월례비가 임금 성격을 갖는다고 본 판결을 내놨기 때문입니다. 

철근콘크리트 업체가 타워크레인 조종기사 16명에게 지급된 월례비를 돌려달라고 낸 소송에 대해 광주고등법원은 지난 2월 16일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법원이 타워크레인 기사의 손을 들어준 겁니다. 재판부에 따르면 건설업체들은 공사 견적 금액에 월례비를 반영했으며 철근콘크리트협의회도 월례비를 통일했기 때문에 월례비가 임금 성격을 갖는다고 봤습니다.  

월례비의 성격은 장시간 위험노동의 대가라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었고 사업주가 공사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월례비를 준 것이 관행으로 수십년간 이어진 것인데 이를 일방적으로 불법으로 볼 수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노조는 월례비 지급 관행을 멈추자는 제안을 여러차례 사측에 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월례비가 장시간 근로와 위험한 작업의 대가로 주고받는 성격이 짙기 때문입니다. 월례비를 없애는 대신 안전한 노동 조건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 그동안 타워크레인 노조의 요구였습니다.

판결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2월 23일  "법원 판결은 월례비의 일반적 성격에 대한 판단이 아닌 개별 소송의 특정한 사실관계 하에서 부당이득반환 가능 여부를 판단한 사례"라며 금품요구를 금지하는 명시적 규정이 부재한 데 기인한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지금까지 관련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생긴 일종의 '법공백'으로 월례비가 관행이 됐다는 주장인데, 이는 오히려 지금까지의 타워크레인 월례비를 불법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건설노조측에서도 월례비를 없애고 근로기준법과 근로시간을 준수하자고 하고 있고, 정부측에서도 월례비 악습을 법과 단속을 없애겠다고 하겠습니다. 앞으로 월례비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관행을 일방적으로 불법, 갈취로 볼 수는 없습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하면 타워크레인 월례비 관행을 지목해 ‘건폭’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 파업때문에 학교 공사 늦어졌다? 학교 신설 승인 늦어진 것이 주 원인

학교 공사가 파업 때문에 늦어졌다는 주장도 살펴봅니다. 원 장관은 지난 1월 12일 학교 공사현장을 방문해 "준공을 앞두고 막바지 공사가 한창 진행돼야 할 시기에 68일간 공사가 지연되면서 완공이 4월로 미뤄져 신입생이나 전학생들이 버스를 타고 1.5㎞ 떨어진 임시 가교로 등교를 해야한다고 하니, 학생들과 부모님들이 많은 불편과 상처를 주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노조 파업 때문에 학교 건물의 준공이 일정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2022년 11월9일 열린 부산시의회 교육위원회 행정감사 회의록을 살펴봅니다. 대통령과 국토부장관이 언급한 바로 그 초등학교, 부산 명문초 신설 공사 지연에 관한 원인을 따지는 부분입니다. 

-윤일현 부산시의원: 그러면 지금 37% 같으면 내년 2월까지 공사해 가지고 이거 다 할 수 있습니까?

=부산시교육청 행정국장 : 지금 현재 우리가 이 부분은 조금 챙겨봐야 될 부분들이 있는데 지금 기초공사가 올라가고 있는 중입니다. 기초공사가 올라가게 되면 골격 자체가 다 완성이 되고 나면 금방 이게 건물이 완성이 되는데 지금 현재 기초골격 공사기간 중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지금 자체가 공기가 원래 우리가 25개월 내지 30개월 정도를 잡아야 되는데 중투가 늦게 통과되는 바람에 14개월밖에 공기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은 조금 어려운 점은 있습니다.

-윤  의원: 그러면 3월 1일 정상개교가 가능한 겁니까?

=교육청 행정국장: 지금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위원님께서 말씀하셨던 레미콘하고 화물연대 파업 그리고 태풍으로 인한 공사 지연 치면 전체 한 45일 정도가 소요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로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3월 1일 자 개교가 되어야 되는데 전에 예결위에서도 말씀 올렸지만 3월 1일 자 개교가 불가능합니다, 현실적으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그래서 저희들이 계속적으로 우리 담당 감독관을 하루에 한 번씩 명지5초에 지금 보내고 있고 그다음에 11월 30일 날 전체 모여서 대책회의를 하는데 되도록 공기를 당기려고 앞당기려고 계속적으로 노력을 합니다마는 아무래도 3월 말까지는 가야 되지 않겠나 하는 그런 생각 가지고 있습니다.

(중략)

-윤 의원: 그리고 지금 이게 공사가 늦어진 게 우리가 5, 6월 달에 레미콘 파업이 있었고 그다음 혹서기 공사 중단이 있었던 걸로 이렇게 나와 있는데 혹서기 공사 중단 이거는 사실상 우리가 공사하면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잖아요. 혹서기는 매년 오는데 그래서 혹서기 공사 중단은 사실은 사유는 안 될 것 같고요. 그거는 공사를 하는 경우에 혹서기는 매년 있는 거니까 그거는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부분인 것 같고 지금 레미콘 파업으로 인해 가지고 공사 중단된 부분은 일단 유감스럽지만 우리가 공사 진행 속도를 높이는데 충분히 제가 이해 가능한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 국장님 조금 전에 답변하시면서 기초공사가 되고 있는데 기초공사가 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속도가 올라간다.

지난해 11월9일에 이미 준공 기일을 맞출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 겁니다. 원인으로는 레미콘, 화물연대 파업, 태풍, 혹서기 공사 중단 등이 꼽힙니다. 근원적으로는 학교 신설을 승인하는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중투위) 일정이 늦어지면서 공기가 11~16개월이나 단축된 것이 결정적입니다. 원래 30개월 걸리는 공사인데 승인이 늦게 떨어지면서 14개월안에 끝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윤 대통령이나 원 장관의 발언처럼 노조 파업 때문에 학교 신설 공사가 지연됐다고 직결시키기엔 원인이 복합적입니다.   

건설 현장에 불합리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관행이라 할지라도 문제가 있다면 정부가 나서서 고쳐야 합니다. 다만 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조폭'에 비유하면서 몰아세우는 방식이 얼마나 유효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건설노조는 3월 1일 광화문 등 서울 중심가에서 '노조탄압 규탄 결의대회'를 열었습니다. 정부가 노동분야에서 실질적인 개혁성과를 내려면 상대방의 이야기도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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