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가사도우미 최저임금 안 주는 싱가포르?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03.2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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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이 안전판 만들어 45년째 운영... 우리는?

조정훈 의원(시대전환)이 대표발의해 논란을 일으켰던 <최저임금 적용 없는 외국인 가사 노동자 도입 법안>이 철회됐습니다.  22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을 통해 확인한 결과, 조 의원을 비롯해 법안을 공동 발의한 의원 11명 중 7명이 법안 철회를 요구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 법안은 싱가포르에서 주변국 출신 여성을 값싼 임금을 주고 가사 노동자로 고용하는 것을 벤치마킹한 겁니다. 왜 이 법안은 논란 끝에 철회됐을까요? 뉴스톱이 싱가포르 사례를 알아보고, 국내 도입에는 문제가 없을지 짚어봤습니다.

출처: 국회의안정보시스템
출처: 국회의안정보시스템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고용제도

조정훈 의원은 21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싱가포르는 1978년부터 저임금 외국인 가사근로자 제도를 도입해 월 70만~100만원의 월급을 받고 있다”며 “한국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면 월 200만원을 써야 하지만 법안이 실현될 경우 싱가포르 같이 월 100만원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사용이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인구 560만명인 싱가포르에는 26만8500명의 이주 가사노동자가 일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미얀마 등 12개 국가 출신자만 가사노동자로 고용을 허가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한국도 들어있습니다. 대략 싱가포르 가정의 5분의 1 정도가 이주 가사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싱가포르에는 우리나라처럼 전 산업에 적용되는 최저임금 제도가 없습니다. 이주 가사노동자들은 고용주와의 협상에 따라 급여가 결정되는데 현지언론 보도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한달에 600싱가포르달러(SGD)를 받는다고 합니다. 한화로 바꾸면 60만원 정도 되는 돈입니다. 싱가포르에서 일한 경험이 많은 이주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경우 숙련도에 따라 급여가 상승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고용주가 부담하는 비용이 추가됩니다. 월 30만원 정도 되는 고용부담금을 정부에 납부해야 하고, 휴일근무수당과 교통비 식료품 구입비 등 생활비도 보조해 줘야 합니다. 이주 가사노동자의 의료보험도 들어줘야 하고, 건강검진 비용도 지불해야 합니다. 500만원 정도되는 고용보증금도 예치해야 합니다. 고용주와 노동자 중 어느 한쪽이 외국인고용 관련 법규를 위반할 경우 반환 받을 수 없습니다.

출처: 싱가포르 정부 홈페이지
출처: 싱가포르 정부 홈페이지

◈여성 경제참가율 상승

이민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1960년대 산업화를 겪으면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급격히 늘었습니다. 이에 따라 가사지원 인력 수요가 폭발했고 싱가포르 정부는 1978년 외국인가정부 제도(Foreign Domestic Servant Scheme)를 시행하게 됩니다. 싱가포르는 여성 경제참가율을 높이기 위해 이주 가사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싱가포르의 시민과 영주권자인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1970년 14.7%에서 2015년 63.2%로 높아졌습니다. 2021년에는 63.9%를 기록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2021년 53.3%를 기록했습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여성이 가사와 육아의 부담에서 벗어나는 것은 경제활동 참가율과 매우 큰 관련이 있습니다.

이주 가사노동자를 송출하는 주변 국가들은 외화 획득 차원에서 자국민들이 싱가포르로 일하러 가는 것을 반겼습니다. 초창기에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많이 넘어왔는데, 말레이시아도 경제 발전을 이루면서 자국의 돌봄 수요가 커졌고, 최근에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미얀마 출신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인력을 내보내는 나라는 외화획득 차원에서 반갑고, 일하는 사람 입장에선 자국에서 일할 때보다 큰 돈을 만질 수 있어 좋습니다. 일을 시키는 사람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을 투입해 가사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어 환영이구요. 인력을 받아들이는 나라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일 수 있어 좋습니다.

 

◈학대 등 인권 문제 노출도…

그러나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이주 가사노동자의 급여, 처우, 안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고용주에 의한 학대 사건도 빈번히 발생합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주 가사노동자가 사회적 최약자라는 점을 고려해 학대 사건을 강력하게 처벌합니다. 고용주가 이들에 대해 학대를 저질렀다가 적발되면 최대 징역 3년 또는 5000SGD(한화 약 5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지고 죄질에 따라 평생 동안 이주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이주 가사노동자가 임신을 하게 되면 고용계약이 해지되고 당사자는 출국을 해야하는 법 규정도 있습니다. 고용주는 잠재적인 위험을 막기 위해 이주 가사노동자의 외출을 제한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주 가사노동자에겐 주 1회의 휴일이 부여되는데 휴일을 부여하는 대신 휴일 수당을 주고 일을 시키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주 가사노동자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지난 1월부터는 매월 1회 의무적으로 휴일을 부여하도록 조치했습니다.

출처: 조정훈 국회의원 페이스북
출처: 조정훈 국회의원 페이스북

◈한국에 도입하려면

조정훈 의원은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것에 매력을 느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45년 동안 이주 가사노동자 제도를 운영하면서 쌓아올린 경험이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주기는 하지만 이주 가사노동자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한 다중의 장치를 구비하고 있습니다. 고용주는 이주 가사노동자가 근무지를 이탈해 불법체류 할 우려를 대비하는 보증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합니다. 고용주는 노동자를 위한 의료보험 및 개인사고 보험에 가입해야 합니다. 6개월 마다 정기 건강검진을 받도록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고용주는 이주 가사노동자의 건강과 복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고용주는 노동자에게 휴식일, 적절한 숙소, 적절한 의료 서비스 및 안전한 근무 조건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주 가사노동자는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는 않지만 안전계약서를 의무적으로 작성해 시킬 수 있는 일과 시키지 못하는 일을 구분하고, 고용계약서를 작성해 고용 조건을 문서로 남겨놓도록 권고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지금도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처우가 심심찮게 보도됩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작업장이 아닌 사적 공간인 가정에서 일하게 되는 이주 가사노동자들이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으면서 일하도록 할 준비가 돼 있을까요? 단지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기뻐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고용노동부는 "가사서비스 분야 저임금 외국인력(E-9) 도입 여부는 내국인 중고령 여성 일자리 잠식 및 근로조건 저하, 저임금으로 인한 외국인력 이탈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역시나 시스템을 먼저 갖춰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시대전환 여성위원회는 지난 10일 여성의날 논평을 통해 이렇게 밝혔습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맞벌이여야만 살 수 있게 됐지만, 돌봄과 가사는 여전히 여성의 영역이다.

여성에게 위기는 인구절벽이 아닌 하루하루 삶이다. 세탁기가 개발돼도 세탁기를 누르는 사람이 여성이라면, 육아휴직이 있어도 휴직하는 사람은 여성뿐이라면, 가사도우미를 찾는 사람이 여성이라면 여성의 책임을 그 누구도 나누지 않은 셈이다.

시대전환에게 여성은 '한국 여성'만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조정훈 의원의 문제일까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덜컥 최저임금 없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는 것은 외국 여성에 대한 착취와 다를 바 없습니다. 조 의원은 외국 여성은 노동 착취의 대상이 되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답을 내놔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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