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명언 팩트체크] 플라톤이 말한 “정치를 외면한 대가”의 진실

⑫ '반민주주의자'이며 '엘리트 철인정치'를 주장한 플라톤에 대한 오해

  • 기사입력 2020.04.10 08:39
  • 최종수정 2021.01.27 18:29
  • 기자명 박강수 기자

가짜 명언들이 판 치고 있다. 뉴스톱은 대표적인 가짜 명언을 모아 왜곡과 날조의 역사를 살피고자 한다. 적게는 몇 년, 많게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문장들이다. 잘못된 말들이 퍼지는데 대체로 정치인과 언론이 앞장을 섰다. 전혀 출처를 짐작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이들 격언의 진위를 폭로하는 기사 또한 많으나 한번 어긋난 말들의 생명력은 여전히 질기다. 뉴스톱은 시리즈로 가짜명언의 진실을 팩트체크한다.

<가짜명언 팩트체크> 시리즈

① 중립을 지킨 자에게 지옥이 예약? 단테는 그런 말한 적 없다

② 동의하지 않지만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 볼테르 발언 아니다

③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선관위도 속은 명언

④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무한도전이 퍼뜨린 가짜 신채호 명언

⑤ 내 옆으로 와 친구가 되어 다오? 카뮈는 말한 적 없는 '감성명언'

⑥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 쳐준다? 한국에서만 쓰이는 앤디 워홀 명언

⑦ 소크라테스 명언으로 알려진 '악법도 법’ 사실인가 아닌가

대처는 "Design or Resign"이란 말을 한 적 없다

‘한 문장이면 누구나 범죄자’ 오용된 괴벨스

각색된 프랑수아 트뤼포의 '시네필 3법칙'

 늙어서도 사회주의자라면 머리가 없는 것? 포퍼도 처칠도 한 적 없는 말

⑫ 플라톤이 말한 “정치를 외면한 대가”의 진실

⑬ 권력을 줘보면 인격을 안다? 링컨이 한 말 아니다

⑭ 링컨이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⑮ 퍼거슨의 '트인낭'은 오역인가

⑯ "케이크를 먹여라" 마리 앙투아네트의 망언?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One of the penalties for refusing to participate in politics is that you end up being governed by your inferiors)

-플라톤

플라톤의 명언을 인용한 트윗들. 트위터 화면 캡처.
플라톤의 명언을 인용한 트윗들. 트위터 화면 캡처.

 

용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말이다. 정치를 혐오하고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민주 시민의 정치의식을 환기시켜주는 한 문장으로 사랑 받는 명언이다. ‘저질스러운’ 대상을 어느 편으로 상정하는지에 따라 여러 진영에서 사용 가능하다. 특히 선거철에 투표 독려 문구로 자주 쓰인다. 트위터 등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출마를 결단한 후보자들정치 활동에 뛰어든 시민 운동가들의 인터뷰 기사, 각종 칼럼에서 발견된다. 가장 최근인 4월 8일 한국일보 칼럼 '내로남불 비판에 무딘 후보들'은 "저질 정치인들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유권자들이 심판해야 한다"며 플라톤 어록을 인용했다. 직접적인 정치 참여든, 정치 단체의 조직화든, 깨어 있는 시민들의 투표든 참여하는 자들만이 저질스러운 정치를 모면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다는 교훈이 깃들어 있다.

 

실상

플라톤의 말은 맞다. 다만 원전의 맥락은 현재의 쓰임과 다소 다르다. 원문의 출처는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 <국가(πολιτεία, The Republic)>다. 소크라테스를 화자로 내세워 그 자신이 아테네의 소피스트들과 나눈 대화와 논쟁을 다룬다. 논쟁의 화두는 ‘정의란 무엇인가’, ‘국가는 어떠해야 하는가’ 등 이다. 문제의 문장은 "정의란 강자의 이익에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트라시마코스에 소크라테스가 반박하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들은 돈이나 명예를 바라고 통치하려 하지 않는다네…(중략)…그들 스스로 통치하기를 거부할 때 그들이 받는 가장 큰 벌은 자기들보다 못한 자들에 의해서 통치 당하는 것일세. 적격자들이 통치하기로 승낙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을 두려워하기 때문인 듯 하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은 마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좋은 것인 양 권력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 대신 이 일을 맡아줄 더 훌륭한 사람들이나 대등한 사람들을 발견할 수 없어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다가간다네.” (<국가>, 천병희 역, 도서출판 숲, 69-70쪽, 347b-d)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자들에 지배당하는 것이다”의 원래 문장은 위에 굵게 표시된 부분, “그들 스스로 통치하기를 거부할 때 그들이 받는 가장 큰 벌은 자기들보다 못한 자들에 의해서 통치 당하는 것일세”에 해당한다. 앞뒤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듯 여기서 ‘정치를 외면한 사람들’은 민주정 하의 아테네 시민들이 아니라 ‘통치의 자격을 갖춘 현인들’이다. 지도자가 될 능력과 자격을 갖춘 인물이 직접 통치에 나서지 않으면 그 자신이 엉뚱한 사람에게 통치를 받게 되고 이것이 적격자의 입장에서 가장 큰 모욕이라는 이야기다.

플라톤은 민주주의자가 아니었다. 스승(소크라테스)에 독배를 쥐어준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그는 난폭한 다수의 정치라는 뜻에서 ‘폭민정치’라고 칭했다. 플라톤은 이상적인 통치 체제로 민주주의가 아닌 ‘철인통치’를 주장한 엘리트주의자였다. 정치는 다수 민중이 아닌 특정한 엘리트의 몫이라는 것이다. 칼 포퍼는 그의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플라톤의 정치 철학을 가리켜 ‘전체주의의 원형’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 플라톤의 문장이 민주 시민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문구로 쓰인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시사IN' 천관율 기자 트위터 캡처.
'시사IN' 천관율 기자 트위터 캡처.

 

플라톤의 명언은 출처가 확실하지만 각색 과정에서 의미가 정반대로 비틀렸다. 번역가 최인호씨는 이를 “고전의 권위와 명성에 주눅 들지 않고 공화적 상상력으로 참신하게 살려낸 문장”이라고 평하며 “<국가>를 읽는 것보다 이 명언 하나를 명심하고 실천하는 게 백배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천의 측면에서는 일리가 있는 해석이지만 “플라톤이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의 참여를 강조했다”는 식의 서술은 오용이다. 플라톤 입장에서도 민주주의 입장에서도 서로 불편한 인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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