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명언 팩트체크] 40살 사회주의자는 머리가 없다? 처칠도 포퍼도 한 적 없는 말

⑪ '젊어서는 진보, 늙어서는 보수가 정상' 출처불명 오래된 격언

  • 기사입력 2020.02.13 09:21
  • 최종수정 2021.01.27 18:27
  • 기자명 박강수 기자

가짜 명언들이 판 치고 있다. 뉴스톱은 대표적인 가짜 명언을 모아 왜곡과 날조의 역사를 살피고자 한다. 적게는 몇 년, 많게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문장들이다. 잘못된 말들이 퍼지는데 대체로 정치인과 언론이 앞장을 섰다. 전혀 출처를 짐작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이들 격언의 진위를 폭로하는 기사 또한 많으나 한번 어긋난 말들의 생명력은 여전히 질기다. 뉴스톱은 시리즈로 가짜명언의 진실을 팩트체크한다.

<가짜명언 팩트체크> 시리즈

① 중립을 지킨 자에게 지옥이 예약? 단테는 그런 말한 적 없다

② 동의하지 않지만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 볼테르 발언 아니다

③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선관위도 속은 명언

④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무한도전이 퍼뜨린 가짜 신채호 명언

⑤ 내 옆으로 와 친구가 되어 다오? 카뮈는 말한 적 없는 '감성명언'

⑥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 쳐준다? 한국에서만 쓰이는 앤디 워홀 명언

⑦ 소크라테스 명언으로 알려진 '악법도 법’ 사실인가 아닌가

대처는 "Design or Resign"이란 말을 한 적 없다

‘한 문장이면 누구나 범죄자’ 오용된 괴벨스

각색된 프랑수아 트뤼포의 '시네필 3법칙'

늙어서도 사회주의자라면 머리가 없는 것? 포퍼도 처칠도 한 적 없는 말

⑫ 플라톤이 말한 “정치를 외면한 대가”의 진실

⑬ 권력을 줘보면 인격을 안다? 링컨이 한 말 아니다

⑭ 링컨이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⑮ 퍼거슨의 '트인낭'은 오역인가

⑯ "케이크를 먹여라" 마리 앙투아네트의 망언?

 

“20살에 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심장이 없는 것이고 40살에 여전히 사회주의자인 사람은 머리가 없는 것이다”

(If a man is not a socialist by the time he is 20, he has no heart. If he is still a socialist by the time he is 40, he has no brain.)

-칼 포퍼

“젊어서 보수주의자인 사람은 심장이 없는 사람이고 늙어서 진보/자유주의자인 사람은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

(Show me a young Conservative and I'll show you someone with no heart. Show me an old Liberal and I'll show you someone with no brains.)

-윈스턴 처칠

칼 라이문트 포퍼(Karl Raimund Popper, 위)와 윈스턴 레너드 스펜서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 아래)
칼 라이문트 포퍼(Karl Raimund Popper, 위)와 윈스턴 레너드 스펜서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 아래)

용례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칼 포퍼와 영국의 정치인 윈스턴 처칠의 명언이라고 한다. 변용이 다양한데 대체로 급진주의적 이념 속 이상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일갈하는 말로 쓰인다. 처칠 버전은 사회주의자(Socialist) 대신 자유주의(Liberal), 보수주의(Conservative)가 쓰였다. 처칠이 먼저 말했고 포퍼가 이를 패러디 했다고 한다. 뿌리 깊은 반공주의의 영향인지 한국에서는 사회주의를 비판한 포퍼 버전이 더 널리 쓰여 왔다. 실제로 칼 포퍼는 젊은 시절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로 활동 했으나 혁명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희생도 당연시하는 당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폭력적 가치관을 목도한 뒤 등 돌린 인물이기도 하다. 김종필 전 총리도 “주사파 대학생 시위가 한창이던 80년대에 자주 인용했던 말”이라고 한다.

 

실상

칼 포퍼의 말도 윈스턴 처칠의 말도 아니다. 국제처칠협회(International Churchill Society)의 웹사이트에 올라온 ‘처칠의 것으로 잘못 인용된 말들’이라는 공지 글에는 “처칠이 ‘25에는 자유주의자, 35에는 보수주의자’라는 말을 한 기록이 어디에도 없다”고 써 있다. 오히려 “처칠은 15살 때 보수주의자였고 35살에는 자유주의자였기 때문에 이런 말을 했을 리 없다(역사학자 폴 에디슨)”라는 것이 협회 쪽의 설명이다. 칼 포퍼의 경우 신뢰할만한 영문 검색 결과조차 나오지 않는다. 누군가 영문 문장을 가져와 포퍼의 삶을 섞은 뒤 한국어 커뮤니티에 유포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처칠협회(International Churchill Society) 웹사이트 공지글. “처칠이 ‘25에는 자유주의자, 35에는 보수주의자’라는 말을 한 기록이 어디에도 없다”고 써 있다.
국제처칠협회(International Churchill Society) 웹사이트 공지글. “처칠이 ‘25에는 자유주의자, 35에는 보수주의자’라는 말을 한 기록이 어디에도 없다”고 써 있다.

포퍼도 처칠도 한 적이 없지만 말 자체의 뿌리는 깊다. 인용구 전문 팩트체크 사이트 ‘쿼트 인베스티게이터(Quote Investigator, 이하 QI)’에서 추적한 바에 따르면 해당 명언은 크게 세 가지 버전으로 분류된다. 문장 구조와 표현은 대동소이하고 비판 대상이 된 이념만 다르다. 오래된 순서대로 ① 공화주의자(Republican) ② 사회주의자(Socialist) ③ 진보/자유주의자(Liberal)다. 19세기 중후반에서 20세기 중후반까지 시기마다 보수주의의 대척점에 있던 사상들이 차례로 소환된 모양새다.

 

시작은 19세기 프랑스

각각의 출처는 모두 다르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공화주의 버전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1875년 프랑스에서 발견된다. 19세기 프랑스의 작가 쥘 클라레티(Jules Claretie)가 쓴 당대 인물들의 전기 모음집 속 정치인 안셀므 바트비(Anselme Batbie) 항목에 다음과 같은 서술이 있다.

“바트비는 편지에서 ‘버크의 역설(Burke paradox)’을 인용하여 그의 기이한 정치적 변화를 설명한 적이 있다: ‘스무 살에 공화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심성과 아량을 의심해 봐야 하지만 서른이 넘어서도 여전히 공화주의자인 사람은 정신이 멀쩡한지 의심해 봐야 한다.’”

19세기 프랑스의 작가 쥘 클라레티(Jules Claretie)가 쓴 당대 인물들의 전기 모음집 속 정치인 안셀므 바트비(Anselme Batbie) 항목 일부. 에드먼드 버크의 것으로 인용되어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작가 쥘 클라레티(Jules Claretie)가 쓴 당대 인물들의 전기 모음집 속 정치인 안셀므 바트비(Anselme Batbie) 항목 일부. 에드먼드 버크의 것으로 인용되어 있다.

같은 기록은 1888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대백과사전(La Grande Encyclopédie)’ 5권에도 나오는데 정작 바트비가 인용한 영국의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1797)의 저작에서는 저 문장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에드먼드 버크는 1775년 미국 독립 혁명은 적극 지지했으나 14년 뒤에 벌어진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는 맹비난을 한 ‘보수주의의 아버지’격인 인물이다. 바트비가 실제 버크의 말을 인용한 것인지 아니면 그의 삶을 함축하기 위해 말을 만들어 낸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1797)
영국의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1797)

본 명언의 실체를 파고들어본 일부 사람들은 이것이 프랑스의 정치인이자 역사학자인 프랑수아 기조(François Guizot, 1787~1874)의 발언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관련해서 확인된 출처는 ‘벤헴의 명언, 잠언, 속담 모음집’이라는 책의 1936년 판본이다. 이전 판본까지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 시간적으로 차이가 반세기 가까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신뢰도가 떨어진다.

19세기 프랑스의 정치인 프랑스아 기조(François Guizot, 1787~1874)
19세기 프랑스의 정치인 프랑스아 기조(François Guizot, 1787~1874)

 

20세기부터 사회주의자와 자유주의자로 변용

이 명언을 사회주의자 버전으로 변용해 사용한 최초의 기록은 1923년 월스트리트 저널에 있다. 스웨덴 국왕 오스카르 2세(Oscar II)의 말이었다고 한다. 당시 원문은 “A man who has not been a socialist before 25 has no heart. If he remains one after 25 he has no head(25에 사회주의자가 되어 보지 않은 자는 심장이 없는 것이나 그가 25 이후에도 사회주의자로 남는다면 머리가 없는 것이다)”이다. 해당 발언은 이후 칼럼과 연극 등을 통해 회자되었다.

스웨덴과 분리 독립 전 노르웨이의 국왕인 오스카 2세(Oscar II, 1829~1907)
스웨덴 국왕이자 분리 독립 전 노르웨이의 국왕인 오스카르 2세(Oscar II, 1829~1907)

사회주의 버전의 또 다른 저작권자로 언급되는 인물은 프랑스의 언론인 조르주 클레망소(Georges Clemenceau)다. 앞서 프랑수아 기조를 출처로 언급했던 ‘벤헴의 명언, 잠언, 속담 모음집’ 1936년 판본에도 나오고 1944년 미국에서 백만 부 이상 팔린 ‘나를 막아봐(Try and Stop Me)’라는 책에도 나온다. 후자의 책은 일화와 야사, 도시전설 모음집이라 신뢰도가 높지 않지만 여기에 수록된 클레망소 관련 일화는 다음과 같다.

“흥분한 지지자 한 사람이 늙은 클레망소의 방으로 들이닥쳐 외쳤다. ‘당신 아들이 방금 공산당에 가입했어요’ 그러자 클레망소가 갑작스런 방문객을 차분히 쳐다보며 말하길 ‘선생, 내 아들은 22살이오. 만약 그 놈이 22살에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면 나는 아들놈과 연을 끊을 것이요. 그리고 만약 30살에도 여전히 공산주의자라면 그때 연을 끊으리다.’”

프랑스의 언론인이자 정치인 조르주 뱅자맹 클레망소(Georges Benjamin Clemenceau, 1841~1929)
프랑스의 언론인이자 정치인 조르주 뱅자맹 클레망소(Georges Benjamin Clemenceau, 1841~1929)

자유주의자 버전은 1970년 미국에서 출간된 책 ‘학생 소요: 위협인가 희망인가?(Student Unrest: Threat or Promise?)’에서 발견된다. 60년대 미국 전역을 뒤흔들 학생 운동을 다룬 책이다. 해당 구절은 이렇다.

“청년들의 반란은 인류사의 진보에서 정당한 심장이 없는 것이고 중년의 나이에 보수주의자가 아니라면 머리가 없는 것이다.’”

이 문장은 이후 몇몇 언론들에 의해 영국의 정치인 벤자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처칠의 말로 알려지는데 모두 명확한 근거는 없다.

 

결론

‘젊어서는 진보, 늙어서는 보수가 정상’이라는 메시지로 요약되는 이 발언은 칼 포퍼의 것도 윈스턴 처칠의 것도 아니다. 프랑스와 영미권 커뮤니티에서 오랜 기간 다양한 형태로 회자된 문장이지만 확실한 출처는 없다. 가장 오래된 안셀므 바트비의 인용은 에드먼드 버크를 원작자로 지목하는데 정작 버크의 저작에는 그런 표현이 없다. 프랑수아 기조와 조르주 클레망소 역시 근거가 빈약하다. 누군가의 명언보다는 파편적으로 전승되어 온 속담에 가까워 보인다. 끝으로 이 ‘속담’을 가장 독창적으로 변용한 아일랜드의 문인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ow)의 1933년 홍콩 대학 연설문 일부를 옮긴다.

“목젖까지 공산주의에 몸을 던지세요. 만약 여러분이 스무 살에 혁명가가 되고자 하지 않는다면 쉰이 넘어서는 구제불능 노땅이 돼버릴 것입니다. 반면 스무 살에 이미 '빨갱이 혁명론자'라면 마흔이 되서도 시류를 쫓아갈 가망이 좀 있습니다.”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ow, 1856~1950)의 사진과 그가 1933년 홍콩 대학에서 한 연설의 일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ow, 1856~1950)의 사진과 그가 1933년 홍콩 대학에서 한 연설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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