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명언 팩트체크] 내 옆으로 와 친구가 되어 다오? 카뮈는 말한 적 없는 '감성명언'

⑤ 출처 불명의 알베르 카뮈 명언

  • 기사입력 2019.11.01 09:33
  • 최종수정 2021.01.27 18:25
  • 기자명 박강수 기자

가짜 명언들이 판 치고 있다. 뉴스톱은 대표적인 가짜 명언을 모아 왜곡과 날조의 역사를 살피고자 한다. 적게는 몇 년, 많게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문장들이다. 잘못된 말들이 퍼지는데 대체로 정치인과 언론이 앞장을 섰다. 전혀 출처를 짐작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이들 격언의 진위를 폭로하는 기사 또한 많으나 한번 어긋난 말들의 생명력은 여전히 질기다. 뉴스톱은 시리즈로 가짜명언의 진실을 팩트체크한다.

<가짜명언 팩트체크> 시리즈

① 중립을 지킨 자에게 지옥이 예약? 단테는 그런 말한 적 없다

② 동의하지 않지만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 볼테르 발언 아니다

③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선관위도 속은 명언

④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무한도전이 퍼뜨린 가짜 신채호 명언

⑤ 내 옆으로 와 친구가 되어 다오? 카뮈는 말한 적 없는 '감성명언'

⑥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 쳐준다? 한국에서만 쓰이는 앤디 워홀 명언

⑦ 소크라테스 명언으로 알려진 '악법도 법’ 사실인가 아닌가

대처는 "Design or Resign"이란 말을 한 적 없다

‘한 문장이면 누구나 범죄자’ 오용된 괴벨스

각색된 프랑수아 트뤼포의 '시네필 3법칙'

늙어서도 사회주의자라면 머리가 없는 것? 포퍼도 처칠도 한 적 없는 말

⑫ 플라톤이 말한 “정치를 외면한 대가”의 진실

⑬ 권력을 줘보면 인격을 안다? 링컨이 한 말 아니다

⑭ 링컨이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⑮ 퍼거슨의 '트인낭'은 오역인가

⑯ "케이크를 먹여라" 마리 앙투아네트의 망언?

 

 

"내 뒤에 걷지 마라, 나는 앞장서지 못할 것이다. 내 앞에 걷지 마라, 나는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그저 내 옆에서 걸어라, 벗이 될 수 있도록"(Don’t walk behind me, I may not lead. Don’t walk in front of me, I may not follow. Just walk beside me and be my friend)

-알베르 카뮈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용례

프랑스의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말로 알려졌다. 대구를 이룬 문장 구조가 깔끔하고 ‘실존주의적 연대’를 은유하는 듯한 메시지에도 울림이 있다. ‘감성 명언’‘종교 명언’으로 종종 쓰인다. 한국보다는 영미권에서 유명하다. 카운슬러 알란 페르시의 책 <니체에게 길을 묻다>에 해당 문구가 카뮈의 말로 인용되어 있고 아마존에서도 카뮈의 명언을 새긴 냉장고 자석 등을 판매 중이다. 한국에서는 아시아경제 칼럼으로 인용된 적이 있다. 나무위키에도 카뮈 어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최근에는 힙합뮤지션 이센스(E SENS)의 2집 앨범 <이방인>의 소개글에 해당 문구가 원문으로 실렸다. 카뮈의 대표작에서 따온 앨범 제목으로 미루어보아 카뮈의 격언으로 인용한 것이라 추정된다.

(좌)멜론 이센스 앨범 소개 화면 캡처. (우)나무위키 카뮈 어록 항목 화면 캡처.

 

실상

카뮈가 그런 말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 명언 팩트체크 사이트 ‘쿼트 인베스티게이터(Quote Investigator)’에서 찾아낸 가장 오래된 원문은 1971년의 것이다(카뮈는 1960년에 죽었다). 1971년 12월 미국 매사추세츠주 퀸시의 지역신문 ‘퀸시 선’에 실린 칼럼에 해당 문구가 등장한다. 칼럼의 저자는 개인 상담사 윌리엄.F.녹스 박사였다. 녹스 박사는 ‘초등학생이 된 아이에 좋은 아버지가 되는 법’을 주제로 한 칼럼에 다음과 같이 썼다.

 

“최근 다른 상담사가 사소하지만 대단한 생각 하나를 전해줬다. 내 뒤에 걷지 마라, 나는 아마도 앞장서지 못할 것이다. 내 앞에 걷지 마라, 나는 아마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그저 내 옆에서 걸어라, 벗이 될 수 있도록’ 아마도 이것이 ‘아버지가 되는 일’의 전부일 것이다. 즉, 친구가 되는 것 말이다.”

 

녹스 박사의 글이 사실이라면 이 명언의 원 출처는 익명의 상담사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이후 여러 지역 신문에서 갖은 방식으로 해당 문장을 사용하며 각기 다른 출처를 밝힌다. 아이오와주 거스리센터시의 신문에서는 1972년 이 문구를 어느 학급의 급훈으로 소개한다. 1973년 캘리포니아주 풀러턴의 십대 청소년 자원 센터 투어에 동행한 ‘LA 타임즈’ 기자는 같은 ‘시구’를 한 명의 과묵한 십대 소녀의 입에서 들었다고 썼다. 1975년에 널리 배포되어 팔린 칼럼 ‘에비에게(Dear Abby)’에서도 위 문장이 어느 12살 소녀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 적혀 있다. 같은 문장을 90년대 유대인 어린이 여름 캠프에서 노랫말로 들었다는 증언도 있다. 각각의 사례가 공유하는 키워드는 십대, 어린이, 청소년과 같은 것들이다.

여기에 카뮈의 이름표를 붙인 가장 오래된 기록은 ‘퀸시 선’에 상담사의 칼럼(최초의 기록)이 실린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발견된다. 뉴저지주 트렌턴의 지역지 ‘디 이브닝 타임즈’에서 지역약물치료시설에 대한 기사를 냈는데 이곳 간판에 해당 문구가 ‘카뮈의 것(from Camus reads)’으로 인용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후 1973년에 ‘시카고 트리뷴’에서 낸 기사에 같은 문장이 카뮈의 명언으로 실렸고 1998년에 이르면 프랑스어 버전이 발견된다. 이는 물론 영어 문장을 번역한 것이다.

트렌턴의 치료소 간판에 어쩌다 카뮈의 말이 전해지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 카뮈는 1960년에 46세 나이로 작고했다. 그의 저작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문장이 아무도 모르게 새어나가 십여 년 뒤 미국의 몇몇 지방지에 실리게 되었다는 가설은 신뢰하기 어렵다. 유대인 캠프도 익명의 상담사 혹은 십대 소녀 시인도 확실한 원작자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1910년에 나온 소설 속에 이 명언의 뿌리 비슷하게 생각되는 구절이 있다. 미국 켄터키 주 출신 소설가 제임스 레인 알렌의 1910년 작품 <그 의사의 크리스마스 이브>다.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여자의 툭 튀어나온 궁둥이가 좁은 길의 가장자리를 넘어갔고 그 바람에 남자는 여자 옆에 바짝 붙어 앞으로 나아가려 용쓰다가 거친 땅 위로 밀쳐졌다.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앞질러 걷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었고 남자는 뒤에서 따라 걷는 수치를 거부했다.

"그럼 내 옆에서 걷든가 돌아가!" 여자는 무심히 웃으며 남자에게 말했다.

 

구글북스 화면 캡처.

(시리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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