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명언 팩트체크]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선관위도 속은 명언

③ 토크빌이 말한 적 없는 '선거명언'의 실상

  • 기사입력 2019.10.30 10:43
  • 최종수정 2021.01.27 18:24
  • 기자명 박강수 기자

가짜 명언들이 판 치고 있다. 뉴스톱은 대표적인 가짜 명언을 모아 왜곡과 날조의 역사를 살피고자 한다. 적게는 몇 년, 많게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문장들이다. 잘못된 말들이 퍼지는데 대체로 정치인과 언론이 앞장을 섰다. 전혀 출처를 짐작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이들 격언의 진위를 폭로하는 기사 또한 많으나 한번 어긋난 말들의 생명력은 여전히 질기다. 뉴스톱은 시리즈로 가짜명언의 진실을 팩트체크한다.

<가짜명언 팩트체크> 시리즈

① 중립을 지킨 자에게 지옥이 예약? 단테는 그런 말한 적 없다

② 동의하지 않지만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 볼테르 발언 아니다

③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선관위도 속은 명언

④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무한도전이 퍼뜨린 가짜 신채호 명언

⑤ 내 옆으로 와 친구가 되어 다오? 카뮈는 말한 적 없는 '감성명언'

⑥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 쳐준다? 한국에서만 쓰이는 앤디 워홀 명언

⑦ 소크라테스 명언으로 알려진 '악법도 법’ 사실인가 아닌가

대처는 "Design or Resign"이란 말을 한 적 없다

‘한 문장이면 누구나 범죄자’ 오용된 괴벨스

각색된 프랑수아 트뤼포의 '시네필 3법칙'

늙어서도 사회주의자라면 머리가 없는 것? 포퍼도 처칠도 한 적 없는 말

⑫ 플라톤이 말한 “정치를 외면한 대가”의 진실

⑬ 권력을 줘보면 인격을 안다? 링컨이 한 말 아니다

⑭ 링컨이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⑮ 퍼거슨의 '트인낭'은 오역인가

⑯ "케이크를 먹여라" 마리 앙투아네트의 망언?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람들은 그들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In every democracy, the people get the government they deserve.)

- 알렉시스 드 토크빌

 

용례

프랑스의 정치 철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말로 알려져 있다. ‘시민은 유권자로서 책임감을, 정치인은 대표자로서 사명감을 돌아보자’는 취지에서 인용되곤 한다. 특히 선거철이나 국회가 혼란한 시기에 많이 쓰인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2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유튜브에 ‘[알렉시 드 토크빌 명언]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린 일이 있다. 신문 기사와 칼럼에도 자주 쓰인다. 한겨레중앙일보매일경제한국경제노컷뉴스 모두 위 문장을 토크빌의 것으로 인용했다.

실상

토크빌의 말이라는 근거는 없다. 원문으로 추정되는 문구는 1811년의 것으로 “모든 국가는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Every nation gets the government it deserves)”라는 말이다. 토크빌은 1805년에 태어났다. 따라서 이 기록이 토크빌의 것이라면 그가 6살 때 한 말이 된다. 위 문장의 주인은 사보이아 공국의 철학자였던 조제프 드 메스트르다. 메스트르가 러시아의 새로운 헌법에 대해서 쓴 편지에 등장하는 문장이라고 한다.

사보이아 공국은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북부 접경 지역에 존재했던 나라로 1847년까지 존속했다. 사보이아 공국의 외교관이기도 했던 메스트르는 보수주의자, 나아가 수구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나미 한국정치연구회 연구위원의 설명에 따르면 메스트르는 ‘프랑스 혁명에 반대하였으며 공화제보다 군주제가 공정하다고 주장하는 반동주의자’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극우 사상가 메스트르의 말이 토크빌의 것으로 와전되어 민주주의 사회의 격언처럼 통용되는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대전선관위 트위터 캡처.
문학동네 트위터 캡처.

이 밖에도 유사한 말이 더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이런 말을 남겼다. “그들이 스스로 통치하기를 거부할 때 그들이 받는 가장 큰 벌은 자기들보다 못한 자들의 통치를 받는 것일세(<국가>, 플라톤, 천병희 역, 도서출판 숲, 68쪽, 347c).” 이 문장 또한 ‘정치적 무관심의 대가는 나보다 못한 사람들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는 교훈을 담아 유통되곤 한다. 그러나 여기서 플라톤이 말하는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사람’은 일반 시민이 아닌 ‘통치의 자격과 능력을 갖춘 현인’을 가리킨다.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불신하고 철인정치를 주창한 엘리트주의자였다.

해당 문구의 현대적 용법에 가장 근사한 문장을 남긴 이는 스코틀랜드의 작가 새뮤얼 스마일스다. 토크빌, 메스트르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그의 대표 저작 <자조론(Self-Help, 1845)>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한 나라의 정치는 그 자체가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을 앞선 훌륭한 정부는 국민과 같은 수준으로 내려갈 것이요, 국민보다 뒤쳐진 정부는 국민의 수준과 동등하게 올라갈 것이다(<자조론>, 새뮤얼 스마일스, 장만기 역, 동서문화사, 28쪽).” 정치의 수준과 국민의 수준은 한 몸이라는 주장이다.

이 ‘선거명언’은 특별한 계기나 근거 없이 토크빌의 말로 와전되었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난 셈이다. 다른 원전을 따져봐도 메스트르나 플라톤 모두 ‘민주주의의 교훈’을 담기에는 본래 의도된 의미 자체가 전혀 다른 말들이다. 여전히 이 명언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새뮤얼 스마일스의 이름으로 인용하는 편이 그나마 나아 보인다. (시리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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