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박원순·이재명의 '기본소득 인식'은 어떠한가

[이원재 칼럼] 정치권 논쟁 이해를 위한 기본소득 개념 정리

  • 기사입력 2020.06.11 10:20
  • 최종수정 2020.06.11 15:10
  • 기자명 뉴스톱

21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기본소득 정치'가 시작됐다. 전국민에게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이 많은 사람들에게 정부와 정치의 효능감을 느끼게 해줬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코로나19사태로 완전히 침체된 민간소비와 이에 따라 어려움을 겪은 소상공인들이 상대적으로 숨통을 틔우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기본소득제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조건없이 보장되는 소득이다. 기본소득이 기존 사회보장제도와 다른 점은 첫째 공동체 구성원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둘째 구직노력 등의 조건이 전혀 없이, 셋째 기업이나 가구가 아닌 개인에게 직접 지급되는 급여라는 점이다.

기본소득제는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발전 등으로 안정적 일자리가 줄어들고 소득불평등이 커지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복지제도가 복잡하게 발전하면서 행정비용이 커지면서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제도다. 가장 단순해 이해하기 쉽고 행정비용을 줄일 수 있으면서도, 소득불안을 없애며, 안정적 일자리가 없어져도 생계만은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이상적인 제도로 거론됐다. 홍기빈 칼폴라니연구소장은 기본소득제가 ‘미래에서 온 도자기 파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불붙은 정치권 기본소득 전투

이번에 포문을 연 사람은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은 ‘국민에게 법적, 형식적 자유를 넘어 물질적, 실질적 자유을 보장해야 한다’는 정치철학을 언급하며 기본소득 도입을 암시했다. ‘실질적 자유'라는 표현은 기본소득제의 대표적 연구자인 벨기에의 필리페 판파레이스의 책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1996)을 연상하게 한다. 판파레이스는 이 책에서 형식적 자유를 넘어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로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야 하며, 그 방법으로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장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기본소득제 도입 자체에 대해서는 ‘재정 등 복잡한 문제가 많다'면서 명확한 답을 회피하며 일자리가 없는 사람이나 청년에게 우선순위가 있다는 암시를 하기도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존 롤스의 철학을 인용하며 맞장구를 치자 기본소득 논의는 정치권 전체로 확산됐다. 안 대표는 “전국민에게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고,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 이상의 생활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복지 욕구별 경제상황별 맞춤형 복지 제도로서의 한국형 기본소득’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청년층에게는 복지 욕구별로 차등 지급하되 조금이라도 일을 하는 경우에는 국가가 제공하는 소득 이외에도 일을 해서 버는 추가소득을 인정해 주겠다거나, 저소득 근로계층에 대해서는 획기적인 근로장려세제 확대를 하겠다거나, 노인세대에는 노후준비 수준에 따라 또 복지욕구에 따라 제공하겠다는 세부사항도 몇 가지 나열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김종인 위원장과 안철수 대표의 논의를 환영하면서, 기본소득 도입의 구체안과 로드맵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연 20만원의 소액으로 증세없는 기본소득으로 출발해서 훗날 연 600만원까지 높이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면서 이 방안을 토론하자고 공개 제안했다.

정치권의 반응은 몇 가지로 갈렸다. 우선 김부겸 전 국회의원은 김종인 위원장이 촉발한 기본소득 논의를 환영하면서, “4차산업혁명 시대엔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가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기본소득이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다만 ‘기존 복지를 줄이고 사회보장서비스를 시장에서 구매하도록 하는 신자유주의적 개념의 기본소득을 경계해야 한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자영업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 종사자, 임시-일용직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심각한 소득감소를 겪고 있'다면서 이들을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따라서 ‘전국민 기본소득보다 전국민 고용보험이 더 정의로운 제도'라면서 기본소득제 도입 주장에 대해 날을 세웠다.

 

이낙연 국회의원도 ‘기본소득 취지를 이해하고 찬반 논의도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이 의원은 과거 트위터에 판파레이스의 <21세기 기본소득>을 읽고 기본소득을 공부하겠다는 글을 올린 일도 있다.

 

정치권 기본소득 발언들 팩트체크 해보니

정치권에서 기본소득제 논의가 이어지는 것은 환영할 바이나 정확하지 않은 개념들이 남발되면서 혼선을 가중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필자가 대표로 있는 LAB2050은 오랜 기간동안 기본소득을 연구한 민간싱크탱크이며 단순히 이론적 연구를 넘어서 어떻게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는지 대안까지 제시한 바 있다. 현재 정치권의 기본소득 논의가 어떤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고, 올바른 개념하에서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겠다.

 

① 김종인 위원장은 정말로 기본소득제를 미래통합당의 핵심정책으로 제안한 것일까?

답: 아직 아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

김종인 위원장이 기본소득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 위원장은 2016년 민주당 비대위원장 시절, 20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기본소득제를 언급했다. 또 같은 해 서강대에서 열린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총회 행사에 참석해 기본소득제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기본소득 의제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지켜봐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김종인 위원장이 강조한 대목은 ‘기본소득제'라는 구체적 정책이라기보다는, 미래통합당이 가져야 할 새로운 이념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미래통합당이 ‘보수라는 말을 쓰지 말자'면서 ‘진보보다 더 진취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법적 자유, 형식적 자유를 넘어서 실질적 자유, 물질적 자유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의 가치인 ‘자유'를 지키면서도 4차 산업혁명 등 바뀐 환경에 맞춰 진화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다. 즉 기존의 보수 이데올로기를 재정립하자는 이야기다.

기본소득제 자체에 대한 질문에서는 틀린 답을 내놓았다. ‘기본적으로 기본소득은 고용되지 않은 사람들,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청년들이 일자리를 갖기 전에 어느 정도 소득을 보장해줘야 하지 않느냐'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는데, 이는 기본소득이 아니다. 오히려 내용상 실업부조에 가까우며, 특히 고용보험에 가입하기 전의 청년들에게까지 급여를 지급하는 구직촉진수당을 이야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미 서울시에서 청년수당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고용노동부가 전국 8만여명의 청년을 대상으로 시행 중인 청년구직촉진수당과 같은 정책이다.

김 위원장은 기본소득제에 대해 부정적 이야기도 동시에 했다. 핀란드와 네덜란드의 사례를 거론하며 ‘성공적이라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이를 받아 ‘핀란드 등이 기본소득을 도입했다가 실패했다'고 이해하는 언론도 많았다. 전문가들 중에서도 핀란드의 실패를 지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현재 지구상에 국가 단위로 기본소득제를 도입한 나라는 없다. 핀란드는 기본소득제를 도입한 게 아니라 기본소득제 연구를 위해 2000명의 실업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헬싱키대 하이키 힐라모 교수가 LAB2050 대화모임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은 장기실업자 2000명에게 기존에 받던 76만원 가량의 실업부조와 거의 같은 액수의 기본소득을 2년간 지급하는 연구였다.

기본소득 수령자들은 원래 받던 실업부조와 받는 액수는 유사하지만, 구직노력 여부를 보고하지 않아도 되었고 교육훈련에 의무적으로 참가하지 않아도 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실업부조 수급자들은 취업을 할 경우 월 300유로(약 40만원)까지 벌어도 여전히 실업부조를 다 받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 수령자들은 그 이상 벌어도 기본소득을 전액 받을 수 있었다. 즉 일부에서 오해한 것처럼 ‘고비용 기본소득'과 ‘저비용 기존 복지’를 비교한 실험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기본소득 수령자들은 기존 실업부조 수령자들보다 사회적 신뢰가 더 높았고, 미래에 대한 확신이 높았으며, 스트레스나 우울증이 적었고 경제적 행복감도 컸다. 하지만 고용일수는 연간 79일로, 73일을 기록한 기존 실업부조 수령자보다 약간만 많았다.

결국 비슷한 액수의 급여를 지급하되 ‘조건없이 자유로운 당근' 기본소득 수령자와 ‘조건부로 훈육하는 채찍' 실업부조 수령자 사이의 비교 실험이었다. 당근은 더 큰 행복감을 주지만 취업 성과는 비슷했다. 이게 실험의 결론이었다. 이를 그저 ‘실패'라고 규정하면 오류다. 오히려 이 연구는 ‘기본소득이 실업자를 행복하고 자신감있게 만든다'는 성공적 결론을 얻었다.

즉 김 위원장은 구체적인 기본소득 정책을 제안한 게 아니라, 미래통합당의 새로운 정책기조를 제안하면서 기본소득제 논의를 재료로 사용한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구체적인 기본소득 정책에 대한 고민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몇몇 언론에서 추측한 대로 ‘청년기본소득’을 고민하는 것이라면 이는 연령별 기본소득으로서 새로운 정책이 될 수 있다.

미래통합당은 총선 참패 뒤 장기적 생존 여부를 물어야 할 정도의 위기 상황이다. 여기에 김종인 위원장이 큰 수를 하나 놓고 있다. 철학을 전환하면서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탈바꿈하려는 시도다.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끈 미래통합당(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했을 때, 그는 기존 보수진영에서는 금기시도던 경제민주화와 복지확대 정책을 내놓도록 했었다. 그런 정책 드라이브가 박 전 대통령 당선의 뒷심이 됐다.

뉴딜연합 이전인 1896~1930년까지의 미국 정치 지형, By Will Be Continued - Own work, CC BY-SA 4.0,
뉴딜연합 이전인 1896~1930년까지의 미국 정치 지형, By Will Be Continued - Own work, CC BY-SA 4.0,
뉴딜연합 이후인 1930년대~1970년대의 미국 정치 지형, By Will Be Continued - Own work, CC BY-SA 4.0,
뉴딜연합 이후인 1930년대~1970년대의 미국 정치 지형, By Will Be Continued - Own work, CC BY-SA 4.0,

링컨 대통령을 배출한 미국 공화당은 성장하는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진보적 정당이었다. 이에 반해 미국 민주당은 노예제를 옹호하며 노예 주인들을 위해 전쟁을 치른 수구 정당이었다. 그런데 1930년대 이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등이 민주당을 자유주의자, 노동조합, 유대인, 흑인 등 소수자들의 정당으로 탈바꿈시키면서 1960년대까지 집권했다. 그 동력은 진보적 정책이었고,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이 그 핵심이었다. 훗날 정치학자들은 '뉴딜연합'이라는 용어로 이 시기 민주당의 정치를 설명했다.

김종인 위원장이 ‘실질적 자유'라는 정책기조 전환에 이어 기본소득 등 더 나아간 구체적 정책 수단들까지 내놓으면서 뉴딜정책급의 정치적 대반전을 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② 박원순 시장 언급처럼 ‘전국민 고용보험'과 ‘기본소득'은 대립하는 정책일까? 또한 고용보험은 기본소득제에 비해 저소득자에게 더 유리한 제도일까?

답: 둘 다 아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시장은 ‘전국민 고용보험이 기본소득제과 비교할 때 더 어려운 사람에게 유리한 제도이므로 정의로운 제도'이며, 따라서 ‘같은 예산이 있다면 기본소득 대신 전국민 고용보험을 해야 한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용어정의부터 다시 짚어 보자. 기본소득은 앞서 설명한 대로 모든 개인에게 조건없이 같은 액수의 소득을 지급하는 제도다. 소비자에게 구매력을 제공하고 일자리 불안 시대에 소득의 격차를 줄이고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다.

반면 고용보험은 고용보험은 사회보험의 일종으로, 취업자가 수입 수준에 맞춰 보험료를 내고 실업 등의 위험에 처했을 때 돌려받는 제도다. 고용되었을 때 받던 수입이 실업으로 너무 많이 하락해서 삶이 붕괴되는 것을 막고, 다시 취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다. 보험료로 운영되며 개인마다 달리 지급하는 고용보험은 세금을 거두어 모두에게 똑같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제와 재원도 목적도 대상도 다르다. 따라서 두 제도는 병립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고용보험이 기본소득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더 유리하다는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 월급 많은 사람에게 실업급여도 더 주는 게 고용보험이다. 박 시장은 이런 통상적 고용보험이 아닌 다른 것을 제안한다고 명시하지는 않았다. 예컨대 월소득 300만원을 벌다가 실업을 당한 사람은 200만원 벌던 사람보다 많은 실업급여를 받는다. 고용보험의 기본 취지는 '소득이 높은 사람이 더 높은 보험료 기여를 하고 더 높은 실업 급여를 받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액수의 소득을 지급하는 기본소득과는 취지가 다르다.

같은 예산을 고용보험이나 기본소득 중 하나로 몰아서 사용할 수 있을까? 역시 재원이 다르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이야기다. 취업자와 고용주가 낸 고용보험료를 기본소득 예산으로 쓸 수도 없고, 세금 징수나 국채 발행을 통해 만든 예산을 기반으로 한 기본소득을 고용보험료로 지급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2020년 전국민에게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을, 고용보험에 편입시켜 확대된 실업급여로 지급할 수 있었을까? 원리가 다르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다. 당분간 사회보험은 사회보험이고 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이다. 아주 먼 미래에 유급 일자리가 완전히 사라지거나 필요없어지는 시대가 와야 고용보험과 기본소득이 중첩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든 핀란드에서든, 좌파든 우파든, 대부분 기본소득 정책 연구자들은 고용보험과 기본소득을 대립시키지 않고 병립하는 제도로 본다.

박시장이 이야기한 ‘정의'는 오히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강화해야 달성될 수 있으며, 기본소득의 일종인 음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에 의해 더 완전하게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고용보험의 제 1목적은 소득재분배가 아니라 고용 촉진이기 때문이다.

다만 박시장이 기존 고용보험의 통념을 뛰어넘는 파격적 분배제도를 ‘전국민 고용보험’이라는 표현으로 제시한 것이라면, 이는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즉 고용보험은 현재는 근로자 지위를 가진 가입자가 자기 부담으로 보험료를 내다가 위기 때 돌려받는 개념인데, 자영업자와 프리랜서 등 개인사업자와 가장 넓게는 미취업자까지 포괄해 운영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때 재원은 국가가 상당부분 부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정도 제도라면 사실상 모든 사람의 생계지원으로 고용보험제도의 운용 목적이 바뀌게 되고, 기본소득제와 중첩되는 부분이 생길 수 있다.

 

③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 정책제안은 현실에서 구현가능한 것인가?

답: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 가능하다.

 

이재명 경기지사
이재명 경기지사

이번 국면에서 명확하게 교과서대로의 기본소득제를 제안한 정치인은 이재명 지사가 유일하다. 이 지사는 단기적으로는 연 50만원의 기본소득을 전국민에게 지급하자고 주장했다. 첫해에는 연 20만원으로 시작해 매년 조금씩 증액해 연 50만원까지 만들되 증세 없이 예산 조정으로 하자는 안이다. 중기적으로는 연 100만원까지 늘리되 조세감면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재원을 마련하자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연 600만원, 월 50만원으로 늘리되 이 때 데이터세, 국토보유세, 로봇세 등 새로운 세금을 신설하고 증세를 하는 방법으로 재원을 마련하자고 했다.

긴급재난지원금은 가구단위로 지급됐다. 하지만 개인 단위로 환산해 보면 20만원 가량의 금액이 된다. 따라서 이 지사의 제안은 2020년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 수준으로부터 출발해 확대발전시키면서 보편적 기본소득제로 가자는 주장이다.

이재명 지사는 과거 성남시장 시절부터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장했다. 2016년 성남시에서는 청년배당을 도입해, 최초로 기본소득과 유사하게 조건없는 소득을 지급하는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전까지 이 지사의 기본소득론은 국토보유세 등 불로소득 과세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국면에서 입장이 바뀌었다.

우선 이전에 없던 증세없는 소액 기본소득제 조기 도입을 주장했다. 10조원(연 20만원)~25조원(연 50만원)의 재원은 기존 예산을 조정해 마련하자는 입장이다. 이번에 긴급재난지원금 재원이 13조원 가량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는 충분히 현실적인 제안이다.

이 지사는 또 연 100만원으로 높일 때 들어갈 25조원 가량은 비과세 감면을 절반으로 줄여 재원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그런데 LAB2050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비과세 감면을 절반으로 줄이면 40조원 가량이 확보된다. 이 지사가 금액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월 30만원~65만원 기본소득제 도입 재원을 연구한 LAB2050의 <국민기본소득제: 2021년부터 재정적으로 실현 가능한 모델 제안>에 따르면 그렇다. 비과세 감면 안에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복잡하기는 하나, 비현실적인 방안은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연 600만원까지 늘릴 때 데이터세, 국토보유세, 로봇세 등 새로운 세금을 신설하고 기타 증세를 하자고 이 지사는 제안했다. 이 대목이 사실 이 지사가 과거 주장하던 내용이다. 당장 새로운 세금을 만들기도 어렵고 불로소득을 측정하기도 어려울 테니, 이 부분에서는 재원 마련 현실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장기적 방안으로 제시했으니 차차 숙의과정을 거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사가 이번 코로나19 국면 이전까지는 불로소득 과세 등 이상적 방안을 주장했으나, 재난지원금 정국을 거치면서 기본소득이 훌쩍 현실적인 정책이라는 판단을 하고 재원마련 방안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즉 실제로 당장 도입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입장을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지사의 재원 마련 방안은 ‘국가부채비율이 너무 많이 오르고 있는데 기본소득까지 도입하면 국가부도가 날 것'이라는 우려도 일축한다. 기존 예산을 조정하거나 소득세 비과세 감면을 줄이거나 증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면, 국가부채는 늘지 않으므로 재정건전성에는 영향이 없다.

 

기본소득제 논의 구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래 일자리와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구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전통적 관점으로, 일자리를 중시하는 것이다. 국가의 임무를 산업혁명 이후 유럽 복지국가까지 이어온 것과 같이, 일자리를 만들고 노동자를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 것이다. 이 관점을 유지하면 고용보험을 확대하고 일자리 정책을 강화하며, 특히 공공일자리를 늘리고 질을 높이는 데 힘을 쓰게 된다. 미래에도 지금과 경제 및 고용 환경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보거나, 달라지더라도 전통적 복지국가의 정책수단으로 대응이 가능하다는 관점이다. 이 관점대로라면 기본소득제가 도입되더라도 먼 미래가 되고 주변적 제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박원순 시장의 관점을 확대해석하면 이렇게 될 수 있다.

둘째는 연령별 기본소득을 도입하며 전환을 준비하는 것이다. 기술혁신으로 일자리가 불안정해지는 현실을 인정하되, 기존 복지국가 문법을 최대한 살리면서 단계적으로 조건없는 소득보장을 하는 것이다. 이 관점을 채택한다면 청년기본소득, 기초연금, 장년 수당 등을 강화하며 노동시장 주변부로부터 소득보장 정책을 도입하는 게 합리적이다. 김종인 위원장의 청년기본소득 언급 등을 해석하면 이 길을 갈 가능성이 있다.

셋째는 일자리 체제의 빠른 전환을 준비하며 전국민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조건없는 기본소득을 작은 액수라도 지급하면서, 경제 환경 변화 추이를 지켜보며 차차 액수를 높이는 전략이다. 이재명 지사가 꾸준히 이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정치권의 이번 기본소득 논쟁은 시의적절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그 존립기반을 위협받고 있는 시기다. 전환적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침 기본소득에 대한 여론도 좋아지고 있다. 재난지원금 지급 이후 관심도와 호감도가 더 높아졌을 가능성이 있다. LAB2050 의뢰로 한국리서치가 조사한 기본소득제 찬반 결과에 따르면 전 국민 61.8%가 기본소득제에 찬성했고 응답자 중 82%는 증세가 필요해도 찬성한다고 답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하기 전인 3월 18~26일 조사였기 때문에 재난지원금이 지급된 지금 조사한다면 더 높게 나올 것이다. 

 

2018~2020년 기본소득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 (%).
2018~2020년 기본소득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 (%).

 

다만 정책을 지나치게 ‘가치’나 ‘도덕'으로 인식하고 이념전쟁으로 끌고 가면 곤란하다. 제도나 정책은 그 자체로 정의롭거나 도덕적인 게 아니다. 그 정책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 안에 정의나 도덕이 담겨 있는 것이고, 제도나 정책은 그 목적을 이루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뿐이다. 기본소득 역시 궁극적 목적이 아니라 정책수단이다. 그 자체로 정의롭거나 도덕적인 것은 아니며, 정의나 도덕은 제도 도입 전후 사회 전체 변화 과정에서 종합적으로 달성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기본소득제는 우리 사회의 여러 가치를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제도라는 데 강점이 있다.

우선 평등의 가치를 달성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승주 성공회대 연구교수가 LAB2050과 함께 진행한 모의실험 결과,  소득세 비과세 감면을 없애는 방식으로 LAB2050이 제안한 국민기본소득제를 도입하면 지니계수가 하락하는 등 소득불평등 해소 효과가 분명하다. 모두에게 같은 소득을 지급하지만, 고소득자에게 더 많이 과세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

자유의 가치도 마찬가지로 달성되기 쉽다. 고용형태와 일의 내용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지만, 임금과 사업소득의 불안정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따라서 보장된 소득은 개인의 실질적 자유를 증진할 수 있고, 선택의 자유를 키울 수 있다. 종속적 고용계약을 맺고 출퇴근하는 대신 원하는 시간에 플랫폼에 접속해 일해도 소득불안이 덜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창업을 해도 실패 때의 생계 위협이 덜하다.  한편으로는 소비자의 구매력을 확충해 소비하게 하므로, 기업가들에게도 기회를 늘리는 제도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평등은 주로 진보적인 세력이, 자유는 주로 보수적인 세력이 주장하는 가치다. 이런 다양한 가치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정책은 많지 않다. 이런 여러 가지 특징 때문에, 최근 정치권의 기본소득제 논의는 시의적절하다. 다만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철저하게 거칠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제는 이렇게 다양한 가치와 연관되어 있으므로, 다양한 가치를 지닌 사람들을 모아 초당파적인 접근을 통해 도입을 추진하는 것이 옳다. 전 국민이 이해관계자이며, 추구하는 가치가 다소 가치가 달라도 적절한 선에서 합의할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그렇다.

방법론상 풀어야 할 문제는 많다. 우선 기본소득의 정의를 명확히 해야 한다. 또 재원 조달의 원칙도 논의해야 한다. 대상을 청년 등 특정 집단부터 시작할지 전국민으로 시작할지도 정리해야 한다. 기존 정책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풀어야 한다. 공론장에서 풀어야 할 문제다. 

이미 기본소득은 눈 앞의 현실적 정책으로 떠올랐다. 이 주제를 공론화하며 정리할 기구가 필요하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함께 정책심의기구이자 사회 공론화 기구인 국민기본소득위원회를 만들어 논의해야 한다. 여기서 기본소득제 추진 로드맵을 정하고, 의사결정 거버넌스를 짜고, 기본소득의 효과를 연구하고 공론화하며 도입 전후작업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제 공은 제도권 정치로 넘어갔다. 코로나19 사태를 업고 차려진 정치권의 기본소득 밥상에 너도나도 숟가락을 얹었다. 그 중 누가 자기 밥그릇만 챙겨가려 했고 누가 진심으로 국민의 밥을 챙기려고 했는지, 명확해지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 이원재는 민간 싱크탱크인 LAB2050 대표다. 한겨레 기자로 일하다 MIT에서 MBA 과정을 밟았고 귀국 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이후 한겨레경제연구소장, 희망제작소 소장, 싱크탱크 여시재 기획이사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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